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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착실히 쌓인 경험치로 더 멀리, '기적' 배우 임윤아



준경(박정민)의 같은 반 친구인 라희는 '기적'의 인물들 중 가장 밝고 명랑한 에너지를 지녔다. 그를 '부족함 없이 잘 자란 친구'로 정의할 찰나, 준경을 좇는 라희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준경의 엉뚱함에서 천재성을 발견한 라희는 그가 마을에 주저앉는 대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17살의 명랑함과 순수한 호기심이 타인의 꿈을 온전히 믿고 도와줄 에너지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라희는 배우 임윤아가 연기한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새벽과 '허쉬'의 지수, 영화 '엑시트'의 의주처럼 올곧고 당차면서도 조금 다른 궤도를 그린다. "지금까지 내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순수하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임윤아 배우의 말이 정확히 라희를 가리킨다.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질문"하며 작품을 고른다는 임윤아 배우는 사투리 톤과 소품 하나까지 꼼꼼히 준비하며, '기적'의 라희라는 새로운 답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엑시트' '허쉬' 등에서 한동안 당차고 똑 부러지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라희는 그들과 비슷하면서도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는데 연기한 배우로선 어땠나.
확실히 앞서 만난 능동적이고 당찬 성격의 캐릭터들과 동일선상에 있으면서도 라희에게선 순수함,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인물 중에서 가장 순수한 것 같다. 그렇지만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준경의 경우처럼 누군가를 돕고 이끌어 줄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런 라희와 본인이 비슷하다고 느낀 점이 있나.
표현을 솔직하게 하는 부분이 비슷한 것 같다. (웃음) 꼭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라기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거나, 친구랑 이야기하는 면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만 하지 실천으로 잘 옮기질 않는데 라희는 실행을 정말 잘하더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 에너지를 닮고 싶었다.




드라마 '사랑비'에서 대학생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고등학생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심 교복을 기대했는데 결국 교복은 못 입고 사복만 입었다. (웃음) 사실 80년대는 나의 학창 시절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학교만의 공기라는 게 확실히 있더라. 책상이랑 복도 같은 걸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중후반은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간대다. 무엇이 낯설고 무엇이 익숙했나.
일단 나는 기차를 타고 학교를 오가지 않아서 그게 가장 큰 차이였고, 준경이 따라하는 "아, 아, 아르바이트~"란 '유머 일번지' 속 유행어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 감독님이 현장에서 "이런 게 있었어요~"하고 설명해 주셨다. (웃음) 그래도 카세트테이프라든지, 버튼을 눌러 켜고 끄는 전등 같은 건 익숙했다.

라희의 의상에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려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또 라희가 서울로 떠난 뒤엔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라희가 부잣집 딸이라 예쁜 옷을 많이 입나 했는데 사실 차 타고 등교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웃음) 라희의 성격을 고려해서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같은 컬러감 있는 의상을 택했고 스카프로 머리를 묶거나 하는 당시의 유행을 반영했다. 라희의 가방도 전부 당시 인기 있었던 브랜드 제품을 골랐다. 지금 복고가 다시 유행이라 별로 예스러워 보이지 않더라. 서울로 떠난 뒤로는 라희의 변화가 보였으면 해서 머리를 자르고, 원피스에 니트를 매치하는 등 성숙하고 세련되게 스타일을 바꿨다.

"공부도 이렇게 안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투리를 열심히 준비했다던데. 어느 정도로 연습했나.
대본이 꽉 차 있을 정도? (웃음) 진짜 그 대본에 열심히 한 흔적이 묻어난다. 대사마다 톤과 어미, 높낮이를 다 적어뒀고 현장에 계시는 사투리 선생님이 해주신 녹음을 계속 듣고 따라했다. (옆을 가리키며) 매니저님이 안동 분이셔서 사투리를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자주 물어봤다. 사실 영화에서 쓰는 봉화 사투리가 대구나 부산 사투리처럼 익숙하진 않다.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영주 분이셔서 어릴 때 들은 기억이 났다. 다른 분들에 비해 그 지역의 사투리가 덜 낯설었고 그래서 더 잘해보고 싶었다.

기자회견 때 "사투리라는 공통의 과제가 있어서 그랬는지 박정민 배우와 처음부터 가깝게 지냈다"고 이야기했다. 여러모로 서로 의지가 많이 됐나보다.
서울을 벗어나 2, 3주 동안 지방 촬영을 하느라 계속 붙어 지냈다. 라희가 준경과 함께 등장하는 신이 많고 사투리 외에도 같이 해나가야 하는 요소들이 있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사투리를 준비할 때 박정민 배우가 자신이 찾은 자료를 계속 공유해 줬다. 그래서 촬영 전부터 고마운 마음이 많았다. 캐릭터를 준비할 때도 내가 감정을 잘 잡을 수 있게끔 분위기를 잘 만들어줬다. 보면서 '역시 박정민이구나' 생각했다. (웃음)

준경과 헌책방에서 대화하는 신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그 신이 첫 촬영이었는데 처음치고 대사가 굉장히 많았다. 사투리 쓰기도 바쁜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더라. 그 신에서 라희가 준경의 뮤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그 포인트를 잘 살리고 싶어서 부담이 많이 됐다.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라희 또래인 18살에 가수와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일찍부터 가수와 배우의 길을 함께 걸어온 것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생각하나.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아이돌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끼가 남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웃음) 화보 촬영을 하거나 연기를 할 때 외적인 자신감이랄까, 쑥스러움을 덜 탄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주신다. 카메라 앞에서 겁이 없다고, 생각해 보면 나는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연기할 때도 카메라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박정민 배우가 "음감이 좋아서인지 사투리를 더 잘 따라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곧잘 따라 한다고 하시더라. '엑시트'에서 액션 신을 할 때도 춤을 계속 춰왔기 때문에 몸이 더 자유로웠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적으로 체감하진 못하지만 이렇게 주변에서 짚어주실 때 아, 내가 모르는 새에 익숙해진 것들이 있고 춤과 노래를 오랫동안 해온 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년이 벌써 데뷔 15주년이다. 스스로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사실 15주년보다 10주년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갑자기 두 자릿수가 되니까 확 와닿더라. 우선 15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신다는 게 가장 좋고 감사하다. 달라진 부분은 역시 경험치가 아닐까. 환경적인 부분에서 체감하는 바도 크다. 예전에는 어딜 가나 막내였는데 이제는 방송국에 아는 분들도 많고, 현장에서 언니, 누나,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소녀시대가 완전체로 출연했을 때 서현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맞다. 이제 군복을 입은 분들을 보며 나보다 어리겠구나 생각한다. (웃음) 방송 장비에 대한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카메라도 굉장히 큰 걸 들고 촬영해야 했는데 이제는 전부 작아졌다. 마이크도 마찬가지다. 그런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게 참. (웃음) 이제 '라떼'를 이야기하는 연차가 됐다.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에서 밤 10시 넘어 시작되는 '나만의 시간'에 종종 영화를 본다고 이야기했다. '나만의 시간'에 어떤 장르의 영화를 즐겨 선택하나.
로맨스, 멜로 장르를 좋아한다. 내 인생 영화도 '어바웃 타임'이다. 레이첼 맥아담스를 좋아해서 최근에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느라 '노트북'과 '서약'을 다시 봤다. (핸드폰을 찾아보며) 아, 최근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티모시 샬라메에게 빠져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도 찾아봤다. (웃음)

드라마 '빅마우스'를 바쁘게 촬영 중이다. 고미호는 어떤 인물인가.
(웃음) 내 입으로 설명하려니 쑥스러운데···.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학 시절에 홍보 모델을 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지닌(웃음), 창호(이종석)의 동창이자 와이프다. 창호가 누명을 쓰고 붙잡혀갔을 때, 창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다. 라희처럼 당찬데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훨씬 어른스러운 인물이다.


글 조현나
사진 오계옥

✱CREDIT: CINE21




우리 곁의 기적
이장훈 감독, 박정민·임윤아 주연의 '기적' 리뷰

기찻길은 있지만 기차는 서지 않는 마을이 있다. 철로를 따라 다른 역으로 걸어가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위험한 순간이 반복되자 어린 준경(박정민)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준경은 '마을에 제대로 된 기차역을 세워달라'는 54통의 편지를 보낸다. 이장훈 감독의 신작 '기적'은 1988년 대한민국 최초로 세워진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기차역이 지어지길 염원하는 준경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조했다. 영화는 기차역을 중심으로 준경과 그를 돕는 친구 라희(임윤아), 누나 보경(이수경),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관계를 차근히 쌓아간다.

영화는 준경에게 기차역 개설과 천문학 공부, 두개의 꿈이 있음을 강조한다. 천문학에 대한 준경의 애정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별을 동경하면서도 준경이 기차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의문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갈등하는 준경의 태도를 주의 깊게 다루면서, 관객 역시 준경을 따라 자연스레 기차역에 집중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레트로가 유행인 오늘날, 극중 배경인 1980년대는 꽤 흥미로운 소재였을 것이다. 하나 영화는 이를 단순히 스타일리시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복고풍의 의상만큼이나 카세트테이프, 비디오, 가구, 학용품 등 눈에 띄지 않는 소품까지 각별히 신경 쓰며 관객을 1980년대로 불러들인다. 낯선 봉화 사투리도 인물들에게 현실감을 더하는 장치가 된다.

주연을 맡은 박정민과 임윤아, 이수경은 이미 익숙한 배우들임에도 '기적'에서 새로운 얼굴을 내보인다. 각자 맡은 인물에 레이어를 더해 한끗 다른 인물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가령 박정민은 '시동'의 택일에 이어 다시 한번 10대를 연기하는데, 날것에 가까운 택일의 분위기와 달리 훨씬 차분하고 무겁게 준경의 에너지를 가져간다. 간혹 엉뚱하게 굴긴 하나 기차역 개설에 관한 책임감, 꿈에 대한 열정, 남다른 천재성에 방점을 찍으며 준경을 보다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 임윤아도 마찬가지다. 영화 '엑시트', 드라마 '허쉬'를 거치며 자기 주도적인 이미지를 굳힌 임윤아는 '기적'에서 처음으로 10대의 명랑함을 내보인다.

영화 말미, 현재 양원역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친다.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던 1980년대 그때 그 사람들의 현재는 어떨지 영화 밖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상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막연한 기적을 기대하는 대신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이야기. 양원역에서 시작된 이장훈 감독의 상상은 '기적'이라는 영화로 확장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글 조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