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영 '시카고'로 11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2018년 'Over my skin'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온 피타니는 '시카고'를 위해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무대 위에 다시 섰다. 티파니 영은 작품 속에서 록시 하트 역으로 열연한다.
지난 4월 뮤지컬 '시카고'가 개막했다. 이번 2021년 '시카고'는 캐스팅 공개 때부터 연일 화제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배우 티파니 영이 록시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었다. 티파니 영은 2007년에 데뷔한 아이돌 소녀시대 멤버로, 내년이면 벌써 데뷔 15주년을 맞이하는 베테랑 가수다. 해외에서 K-POP을 알리기 시작한 장본인이기도 하며 전 국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히트곡만 해도 수없이 보유하고 있다.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불리며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커리어 탑을 찍은 티파니 영의 뮤지컬 '시카고' 소식은 여러 의미로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를 부르며 수줍게 웃던 티파니는 이제 멋있는 미소와 함께 '제가 더 이상 어리지만은 않아요'라고 말한다.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라는 티파니 영. 지난 4월 19일, 평생의 버킷리스트였던 록시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티파니 영을 만나 그의 '시카고' 도전기를 더 자세히 들어봤다.
'시카고'가 개막한지 약 3주 정도 지났어요. 첫 공연을 마친 후 기분이 어땠나요?
첫 공연 날짜를 디데이로 삼아서 매일 기다리고 있었어요. 연습을 오랫동안 꾸준하게 나갔고 또 실전처럼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긴장되더라고요. 사실 제일 최근에 6번째 공연을 마쳤는데 이제서야 공연을 조금씩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공연이 끝나면 연출님께 지시를 받고 그다음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매 회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카고'는 트리플 록시 캐스팅으로 큰 화제를 모았어요. 세 록시 중 티파니 영만의 차별점이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일 순수한 록시라는 말을 듣고 있어요. 연출님께서 순수해서 더 '또라이'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록시가 탄생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벌써 다섯 번째 시즌으로 참여하고 있는 아이비 언니도 제 연기를 보면서 '와, 그런 발상도 가능하구나'라고 감탄해 줘요. 그럴 때마다 색다른 록시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요. 또 저는 연기할 때 최대한 제가 갖고 있는 끼와 느낌을 싹 다 빼려고 해요. 이상하게 뭔가를 노리고 연기하면 제가 봐도 록시가 너무 얄밉더라고요. 순수하게 마음 가는 대로 진심을 다해야 엉뚱한 록시가 더 빛난다고 생각해요.
록시를 연기하면서 가장 즐겁고 신나는 순간이 언젠지 궁금해요.
연습할 때는 가장 걱정했던 곡인데, 2막의 'Me and My Baby' 넘버요. 저 넘버가 댄스와 박자가 다 엇갈리는 느낌의 곡이라 리허설 때는 가장 신경을 많이 썼는데 공연할 때는 저도 모르게 제일 흥이 나요. 저만의 '흥 폭발' 포인트가 됐어요. 특히 제가 앞부분에 손뼉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관객분들도 따라서 같이 쳐주시니까 더 재밌게 공연하고 있어요.
'시카고'에서 마음을 강하게 치고 간 대사는 무엇이었나요?
2막에 헝가리 이민자 후냑이 교수형에 처하기 전 애론 변호사가 그를 보고 '말도 못하는 외국 촌년'이라고 해요. 그 대사가 저를 항상 눈물 나게 해요. 제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외국인이었고 또 저는 반대로 한국에서 외국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이방인 후냑의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아요. 외국인 여성으로서 불공평한 상황에 처한 후냑을 보면 '그냥 기회를 한 번만 더 주면 안 돼요?', '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거예요?'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제가 가서 돕고 싶달까요. 외국인, 이민자 등 이런 키워드들이 요즘 시대의 핫토픽인데 저는 그냥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록시 하트와 티파니 영의 싱크로율은 어떤가요.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어요. 우선 가장 다른 점은 록시는 '센터병'이 너무 심해요. (웃음) 저는 센터병이 없거든요. 그저 제가 잘하는 파트를 맡아서 그 부분에 충실하려고 해요. 소녀시대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록시는 자기가 맡은 파트도 아닌데 너무 나서는 편이랄까요? (웃음) 닮은 점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성향이 있다는 거예요. 흠뻑 무언가에 빠져 버리는 거요.
그렇다면 최근 티파니 영이 흠뻑 빠졌던 건 무엇이었나요.
최근에 인터뷰 영상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해외 인터뷰는 오프라 윈프리가 진행했던 5~6년 전 토크쇼 영상들과 그가 진행한 팟캐스트를 매일 봤고요. 국내 인터뷰는 '문명특급'의 재재 님 영상이요.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연구했는데요. 우선 인터뷰 때 더 좋은 답변들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또 반대로 제가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상황이 온다면 의미 있는 질문들을 가져가고 싶다는 갈증도 생겼고요. 특히 이번 '시카고' 프로모션으로 재재 님을 뵈었는데 인터뷰 내내 너무 즐거웠어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니까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터뷰를 챙겨보고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인터뷰를 할 때 유독 걸그룹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립스틱 색 뭐예요?', '옷이 너무 예뻐요'와 같은 질문들을 받아요. 그런데 저는 더 깊이 있는 질문들을 원하거든요. 제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거나 건강한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질문들이요. 그래서 제가 받고 싶은 질문들을 오프라 윈프리와 재재의 인터뷰를 통해 찾았던 것 같아요. 또 저를 바라보고 있는 후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좋은 인터뷰의 예시를 찾아서 보고 저부터 액션을 취해야 후배들도 점차 자신감을 갖고 좋은 질문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도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준비한 음악에 대해 깊이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페임' 이후로 11년 만에 다시 뮤지컬로 돌아오게 됐어요. 왜 하필 '시카고'였나요.
'시카고'는 항상 제 꿈의 무대였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시카고'를 꿈꾸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워낙 세련되고 위트 있는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뭐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만 집중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시카고'를 할 때 다른 스케줄 때문에 제 모든 걸 쏟을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제가 너무 속상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오디션 공고를 발견했어요. '배우로서 30대의 시작을 여는 작품이 '시카고'라면 얼마나 끝내줄까?'라고 생각하면서 도전했죠. 그런데 제가 방금 말한 문장, 진짜 록시 같지 않았나요? (웃음)
그런데 연습할 때 많이 울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네, 많이 울었어요. 숨어서도 울긴 했지만 배우들 앞에서 처음으로 울었을 때는 2막에 나오는 록시의 법정 장면이에요. 그 장면이 대본과 배우들의 팀워크가 빛나는 '시카고'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너무 바쁜 거예요. 머리 속으로는 번역기를 돌리면서 대사를 뱉고, 안무도 맞추고, 또 중간에 여러 배우들을 향한 리액션도 준비하고. 리허설을 하는데 저 때문에 그 장면을 다시 한다는 거에 여러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한꺼번에 터졌어요. 그런데 다른 배우분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너 이 장면 지금 세 번 만에 완성했어. 보통은 6일 걸려' 이러시는 거예요. 진작 말씀해 주시면 제가 덜 울었을 텐데. (웃음) 또 연출님도 그날 저를 찾아오셔서 제가 지금까지의 록시들 중에 제일 늦게 울었다고 축하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원래 록시를 준비하는 배우들이 정말 많이 운대요. 제가 울 때마다 아이비 언니도 옆에 와서 같이 울고, 경아도 또 울고, 그냥 록시들은 다 울었어요.
주변 선배들도 도움을 많이 줬을 것 같아요.
선배들을 포함해서 모든 '시카고' 팀이 저에겐 큰 원동력이었어요. 제가 제 자신을 안 믿고 있을 때마다 다들 와서 '너 록시잖아' 이런 한마디를 던지고 가주시는데 누군가 저를 믿고 있다는 게 너무 큰 위안이 됐죠. 생각해 보면 저만 제 자신을 안 믿고 있는 거니까 더 자신감을 갖고 연습했죠. 또 벨마 역 선배들은 국가대표처럼 공연을 준비하세요. 특히 같은 여성 배우로서 선배들이 끌고 나가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요. 록시 역의 아이비 언니와 경아한테는 의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아이비 언니는 대본 하나하나 다 같이 읽어주고 매 장면 중요한 포인트들도 다시 다 짚어줬어요. 경아와는 모든 고민을 함께 했죠. 빌리 역의 최재림, 박건형 선배님은 말 그대로 록시의 구원자 같은 느낌이었어요. 두 분 연습하는 걸 유심히 보면서 제가 따로 연구할 정도였어요.
소녀시대 티파니로 무대를 서는 것과 배우 티파니 영으로 '시카고' 무대에 서는 게 많이 달랐나요?
소녀시대로 공연에 설 때는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에너지가 폭발해요. 멤버들이랑 웃고, 재밌는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열심히 즐기다가 가요. 제 모든 텐션을 최대로 끌어올린 후에 무대에 서면 더 신나거든요. 그런데 뮤지컬은 달라요. 지금은 공연 시작 훨씬 전부터 제 모든 걸 비워내려고 노력해요. 대기실에 파도 소리를 틀어놓고 아로마 향을 피우면서 저만의 시간을 조용히 갖다가 무대에 올라가요. 배우로서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느낌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갖는 시선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상처는 늘 받아요. 예전에는 웃으면서 애써 '괜찮아요'라고 이야기했다면 요즘은 솔직하게 상처받는다고 말해요. 누군가를 상처 주기 위해 하는 말들인데 그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 최대 강점이 자기 객관화가 잘 된다는 거예요. 건강한 비판과 올바른 지적엔 무조건 오케이를 외쳐요. 물론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진짜 그런지 한 번은 다시 되돌아보고 정말 그렇다면 무조건 고치려고 해요. 그런데 이건 그냥 나를 상처 주기 위해 하는 말들이구나 싶으면 넘어가요. 아이돌이라는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는 게, 꿈 하나만 바라보면서 달려온 어린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다들 최선을 다하거든요. 아이돌로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 그 과정들도 다른 아티스트들이 밟아온 길과 똑같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저는 상담 치료도 받고 건강한 마인드로 잘 이겨내고 있어요. 늘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다음에 또 '시카고'에 참여하게 된다면 록시와 벨마 둘 중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제가 예전부터 늘 하던 말이 있어요. 인기는 계절과도 같다고요. 그런데 이게 '시카고'를 통해서도 정말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기를 갑자기 얻게 되는 록시와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벨마까지, 두 캐릭터 모두 너무 공감이 갔어요. 30대가 돼서야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껴가는 요즘이라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빠른 시일 내에 또 '시카고'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선 록시요. 제가 태티서로 유닛 활동을 시작할 때 아이비 언니가 '시카고' 첫 시즌에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지금 다섯 번째 시즌을 하고 있는 걸 보니까 너무 멋진 거예요. 록시는 양파 같은 매력을 지닌 캐릭터라서 하면 할수록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또 하게 된다면 그때의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록시도 궁금해지고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시카고'에 참여한다면 벨마도 꼭 해보고 싶어요. 물론 제가 벨마와 어울리는 타이밍이 중요하겠지만요. 윤공주 선배도 몇 번이고 저한테 '너도 벨마 느낌이 강해. 꼭 벨마도 한 번 해' 이렇게 말을 건넸거든요.
'시카고' 록시 외에도 욕심나는 배역이 있다면 궁금해요.
제가 늘 말하는 인생 탑 3 배역들이 있어요. 우선 국내에선 '시카고' 록시, '지킬앤하이드' 루시, 그리고 '위키드' 글린다요. 해외에선 록시 외에 '알라딘'의 자스민과 '물랑루즈'의 사틴이요. 물론 내공이 더 쌓여야 하겠지만 제가 늘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캐릭터들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카고' 개막 전에 '고스트' 마지막 공연을 관람했었는데 제가 무대 세트뿐만 아니라 몰리 역할에 완전히 반했어요. 공연 내내 너무 신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무대 마술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라도 하고 싶어요. 저 계약서 내용 잘 지키겠습니다. (웃음)
티파니 영에게 '시카고'는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제가 아티스트로서 가져야 하는 방향성을 정해준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시카고'는 제 평생 버킷리스트였는데 이렇게 오디션에 통과하고 연습 과정을 무사히 지나 현재 공연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에겐 이미 너무 큰 의미예요. 이번 '시카고'를 통해 저는 더 크고 멋진 도전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나침반 같은 작품이기도 하네요. 제 30대 인생의 첫 시작을 함께해 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카고'를 마무리한 후에 어떤 평을 가장 듣고 싶은가요?
그냥 관객들이 지나가는 말로 '티파니 잘하잖아?'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제일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소녀시대로 설 때는 3분의 무대를 통해 칭찬을 받았다면 '시카고' 후엔 2시간 반 동안 한 작품을 끌고 간 좋은 스토리 텔러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CREDIT: SEENSEE COMPANY, 네이버 공연전시 올댓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