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마리끌레르 3월호 : 더 다양한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갈증과 갈구, 갈망이 풀어지기를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며 8인의 여성 배우가 함께한 젠더프리 2021. #SOOYOUNG #Marie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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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많은 여성 배우가 작품에서 각자의 서사를 풍부하게 쌓으며 존재하기를, 그리고 더 다양한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갈증과 갈구, 갈망이 충분히 풀어지기를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며 8인의 여성 배우가 함께한 젠더프리 2021.
올해로 마리끌레르 젠더프리 기획이 4회째를 맞았다. 매년 이어가는 것이 옳은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올해에도 8인의 여성 배우가 함께했다. 2018년 대중문화계에 분 미투 운동 이후 젠더프리 기획에 참여한 배우들의 인터뷰도 조금씩 내용이 변해가고 있고,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유독 작품 속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았다. 올해에는 최대한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고자 했다. 기획에 참여한 8명의 배우가 마음에 품은 연기를 향한 뜨거움, 사랑하는 여성 캐릭터, 연기하기를 소망하는 인물까지.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지금을 살아가는 보다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앞으로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최수영
# 스물
# 나에게 배우란 자유
이전의 젠더프리 기획을 본 적 있는가?
지난해에 보고 진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제안받아 신기했다. 공연계에서는 젠더프리 캐스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나.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이뤄졌던 연극 '오펀스'도 인상 깊게 봤다. 극중 등장인물이 모두 남성이지만 여자 배우들도 함께 캐스팅되었다. 남자로 표현된 인물을 여자가 연기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공연계에서는 이미 다양한 시도가 실현되고 있고, 이렇게 매거진을 통해 짤막한 영상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영화 '스물'의 대사를 연기했다. 더불어 고민했던 영화가 '아수라'의 장례식 장면이었다.
'아수라'는 여자 배우들에게 기회가 많지 않은 누아르 장르다. 악인들이 등장해 누가 과연 진짜 악인인지, 무엇이 진짜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끌고 가는데, 그중 문상 온 박성배가 육개장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아주 흔한 말 같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해보고 싶었다. 곱씹을수록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비열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렇게 비열하고 섬뜩한 악의 끝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내가 연기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반면에 '스물'은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고 가벼워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지난 한 해 유독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았다. 그중 '런온'의 '단아'는 재벌 남자 캐릭터에게 주어진 클리셰가 전복된 느낌마저 들었다.
단아를 연기하며 참 좋았고 짜릿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는 인물이어서 더 마음이 갔다. 하지만 이 시대의 여성상이라는 틀에 맞춰 한정적인 인물만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여성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가치관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런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에 맞춰 서사를 무너뜨리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인물이 많이 창작되면 좋겠다. 아직 성장하지 못했고 아픔을 가진 캐릭터가 어떤 일을 계기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장이 덜 된 인물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약한 여자의 성장담도 보고 싶다.
최근에 흥미롭게 본 여자는 누구인가?
'퀸스 갬빗'. 그 시대에 체스는 남자들만의 게임이었지만 '베스 하먼'은 남자들을 상대로 승리해나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구멍들이 있다. 중독이 그의 정신을 붙잡고, 가족이 자신을 버렸다는 중요한 서사도 있고, 슬럼프를 겪으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시간도 보낸다. 나는 '퀸스 갬빗'이라는 드라마가 여성이 체스 게임에서 남성을 제치고 우승했다는 통쾌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니라 한 천재가 천재성을 가진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천재는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욕심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때로는 서로 줄다리기도 하고 권력 싸움을 하며 목표를 향해가는 이야기에 끌린다. 현실에서도 성별을 떠나 이 사람이 잘해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며 차별과 역차별 없이 실력으로만 정당하게 평가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인터뷰에 앞서 배우를 정의하는 코멘터리를 촬영할 때 배우를 자유라고 정의했다.
연기는 자유 같다. 연기할 때만큼은 누구나 될 수 있고, 캐릭터로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용서가 되고, 또 자유를 느끼고 싶은 소망도 표현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롭게, 현장에서는 긴장하는 나에게서 자유롭게 연기하고 싶다. 다양한 의미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런온' 방영을 앞두고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할 때만 하더라도 배우로서 설레는 감정이 많았던 것 같다. 반면에 드라마와 단아에 대한 뜨거웠던 반응에 비해 오늘은 굉장히 차분해 보인다.
맞다. 그때는 정말 설레는 시간 속에 살았다. 드라마를 마친 지금의 나는 그렇게 들떠 있지 않다. 이제 더 이상 크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옛날의 내게 느꼈던 걱정이나 불안감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마음이 너무 들뜨거나 가라앉을까 봐 나 자신을 지나치게 채근했다.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마음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지만 이제는 이 일을 좀 더 직업으로서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내가 잘할 수 있기에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하나의 작품에서, 팀의 일원이 되어 작품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내 일이다. 그렇게 직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생각으로 일하는 법이다.
꽉 찼던 연말을 지나 새해를 맞았다. 2021년을 어떻게 채우고 싶은가?
여전히 경험하고 싶은 세상이 많다. 해외 제작 시스템도 궁금하고 낯선 곳에 던져진 나도 궁금하다.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다. 작품을 마치고 이렇게 쉬는 시간이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않은 나도 나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부족한 나를 자존심과 자존감으로 억지로 포장했다면 이제는 모양새가 다듬어진 느낌이다. 내 안의 확신으로부터 나오는 자존감을 가지고 일하게 됐다. 선택받지 못할 때도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나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올해도 보낼 것이다. '단아'가 소중한 이유 중 하나는 만족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보고 싶어 하는 것, 부족한 것을 먼저 생각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쫓기듯 조급하게 선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택받지 않더라도 누군가 나를 알아봐줄 때까지 내 목소리를 다하는 게 올해의 계획이다.
photographer 우상희
editor 박민
styling 서수경, 이다슬
hair 나건웅(우선)
makeup 이명선(우선)
✱CREDIT: Marie Claire Korea